DraftSight의 마지막 자유 행보

DraftSight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게 정말 기업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가 싶어 Dassault에 직접 문의하기도 했다. 사실 답은 정확하지는 않았다. 유료 혹은 무료의 여부를 확인해주었다기 보다는 사용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약각은 애매한 답이었다. 아마 내부에서조차 명확하지는 않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료 서비스인 Professional 패키지를 구입해야 하니, 일반적인 2D 도면 생성 용도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수년이 지난 후 국내 판매처에서의 인식은 여전했다. DraftSight가 뭔지를 아는 판매처는 없었다. 물론 SolidWorks 판매하기도 덕찬 그들에게 무료 어플리케이션이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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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ftSight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연구소나 설계부서의 구조 조정(인적 구조 조정이 아닌 기술적 구조 조정)를 진행하면서 였다. 솔직히-그때나 지금이나-각 설계자 개인의 행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대부분은 설계자들은 AutoCAD의 기능적 범위에서 벗어난 그 어떤 새로운 시도 조차 관심이 없었다. 사실 AutoCAD 자체의 기능적 문제는 전혀 없었다. 실제 문제는 도면을 생성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한 설계자의 능력이나 한계에 제한되어 있다보니 전체적인 제품 개발이나 기술 개선 과정 보다는 단순한 일상 업무 혹은 개별 실적 수준으로 전락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설계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도면 추출의 시간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결과를 보는 과정에서 일관성이 없다보니 계획 수립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이 된 후에는 직원들도 적당히 업무 생산성을 조절하여 눈치껏 대응한다. 이런 결과는 대개 관리자나 부서장이 공학도 출신이 아닌 경우 더욱이 엔지니어링 부문의 경험이 없다면 더욱 심각했다. 반대로 나의 경우는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반발로 업무 파악 자체를 지연시키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난 어떤 경우라도 회사나 경영진 보다는 개별 직원들의 입장을 지원하고자 했기 때문에 굳이 드러내고 불만을 경고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나 나나 모두 남의 돈 받는 입장이니. 하지만 업무 경험이나 근속이 길어진 담당자들의 대응은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점은 분명했다.

설계 및 개발 환경의 구조 조정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경영진 특히 회장의 관심이 컸다는 점이다. 그러니 개별 직원이나 팀장들이 드러내고 반발하지는 않았지만 공공연히 내게 불만을 제기하거나 나름의 방식대로 업무 태만 수준으로 업무를 조절하여 대응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언제나(가능하면) 그들의 편에 서고자 했다. 그런 입장에서도 종종 선을 넘는 경우를 보았지만 사태를 크게 만들지 않고 내 수준에서 감당했다. 어차피 구조 조정 자체는 나나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될 것이니.

회사의 설계 및 제품 개발 과정의 구조 조정은 3D CAD 시스템과 PDM/PLM 시스템 도입이 핵심 중 하나였다. 마침 회사의 ERP도 20년이 지나 새로 업데이트되고 있었기 때문에 맞물려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유지보수 서비스를 한번도 이용하지 않고 있는 AutoCAD를 굳이 비용 지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DraftSight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비용은 차라리 3D CAD 시스템의 구입 비용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2D CAD 시스템, AutoCAD 기반의 제도 환경에서만 진행되었던 설계 플랫폼을 변경이 결코 쉽지 않았다. 자세히 언급하자면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DraftSight가 AutoCAD를 대체하는 거창한 계획은 실패했다.

만일 DraftSight가 AutoCAD를 성공적으로 대체했다면 3D CAD 시스템 역시 당연히 SolidWorks가 채택될 가능성은 거의 100%였다고 할 수 있고, PDM 시스템 역시 SolidWorks의 ePDM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AutoCAD가 그대로 유지된 덕분에 전혀 다른-물론 Autodesk의 제품이 아닌-3D CAD 시스템과 PDM 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DraftSight가 아닌 AutoCAD를 유지해야 하는 수만 가지 이유 중 최종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은 어이 없지만 기존 화면과 다르다는 설계자들의 푸념과 이를 빙자한 업무 지연 덕분이었다. 이러한 행태가 가능하게 된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어떤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든 기존 시스템 보다 나은 혹은 빠른 업무 성과를 기대했지만, 실질적 설계 업무를 장악한 몇몇 고참 직원들 중심의 이른바 적폐 행태로 인한 업무 지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내 입장에서도 충분하지 못한 비용 한도 내에서 완벽한 대응 체계를 마련해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적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난 그때도 여전히 그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 결과는 설계와 개발 부서에는 2D CAD 시스템과 3D CAD 시스템이 공존하는-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어느 회사에서나 일반적인-상황이 되었다. 단언컨데 2D CAD 시스템과 3D CAD 시스템이 공존하게 되면, 시간의 문제일 뿐이자 3D CAD 시스템의 역할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간단한 계산을 하기 위해 단순한 이른바 쌀집 계산기과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컴퓨터 시스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비슷하다. 어차피 도면의 빠른 생성과 수정이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입장에서 아직 서튼 3D CAD 시스템을 통하여 도면을 생성하는 것보다 이미 손에 익숙한 2D CAD 시스템을 사용하는 도면을 생성하는 것이 훨씬 빠른 성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 학습해야 하는 신입 사원들 입장에서는 어느 경우나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수 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을 AutoCAD를 사용해 온 입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도면 수정 건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차라리 새로운 학습의 노력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의 실적에 따라 정리되는 직원 역시 새로운 신입 사원들의 비중이 크다보다 상대적으로 3D CAD 시스템 운용 인력은 자주 바뀔 뿐만 아니라 수도 줄어들게 되었고 설계와 개발 업무는 더욱더 기존 2D CAD 시스템에 의지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회사는 경영 실적 저하를 인한 또 다른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3D CAD 시스템의 운용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관련한 PDM 시스템의 운용 규모나 수준도 크게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즈음 회사에 3D CAD 시스템이나 PDM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은 거의 없었다. 새로운 제품 개발이 거의 없다보니 PDM 시스템은 그저 기존 도면 정보를 확인하는 용도로 제한되어 사용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물론 3D CAD 시스템이나 PDM 시스템의 유지보수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몇일 전 Dssault에서 DraftSight의 유료화에 관한 공지를 보았다. 사실 포스팅의 처음에서 언급했지만 업무적으로 DraftSight를 사용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SolidWorks의 ePDM 시스템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Professional 라이센스를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큰 변화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DraftSight를 AutoCAD(혹은 AutoCAD LT) 대체 용도로 사용했다면 큰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유료화에도 불구하는 년간 지출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AutoCAD LT에 비해서는 DraftSight Standard 버전 기준 약 1/4 수준 그리고 AutoCAD에 비해서는 DraftSight Professional 버전 기준으로 약 1/8 수준이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만일 AutoCAD를 3D CAD 시스템이라고 본다면, DraftSIght Premium 버전 기준으로 약 1/3 수준이다. 즉 가격적인 잇점은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존 Professional 버전을 사용하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공짜로 사용하다가 작더라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거부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정도 비용이면 AutoCAD 호환의 다른 2D CAD 시스템에 소요되는 비용보다도 훨씬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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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DraftSIght 사용자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열받는 부분은 유료화 자체가 아닌, 기존 무료 버전에 대한 사용 제한이라고 본다. 아직까지는 Windows 운영체제에 한하지만 2019 버전부터는 무료 버전이 제공되지 않으며, 기존에 무료로 다운로드하여 사용하고 있는 2018 이전 버전에 대해서는 2019년말까지만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10년 넘어 무료로 사용해온 입장이라면 이러한 정책 변화에 차라리 그 동안 고마웠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업무와 관련한 일이라면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멋모르게 2019 버전을 다운로드하여 실행하고 나면 이전 2018 혹은 그 이하 버전을 다시 다운로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재실행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

나 역시 솔직히 이런 정책 변화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기존 다운로드 버전은 계속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Dassualt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느 경우든 DraftSIght를 포함한 AutoCAD 호환성을 지닌 수 많은 2D CAD 시스템은 DWG 포맷의 정보가 특별한 변환 과정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어려움을 없을 것이다. ePDM 시스템 운용을 위한 이미 DraftSight Professional을 사용하는 입장는 사실 큰 변화가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DraftSight의 정책 변화에 이런저런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의 사용에 대한 고마움도 물론이고 혹은 예상보다 늦은 변화라는 점에서 큰 불만은 없다. 남은 과제 혹은 관심은 이제 DraftSight가 누렸던 그 영광을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이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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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Draftsight의 이런 정책 변화는 현재 Windows 버전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Mac OS나 Linux 버전은 그대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하지만 위의 사항을 보고나니 왠지 2019 버전을 다운로드하기 두렵기도 하다.

DraftSight의 마지막 자유 행보”에 대한 1개의 생각

  1. ㅇㅇ

    만드는 제품에 따라 달라질것 같네요. AutoCAD를 DraftSight로(2D에서 2D로) 대체하는걸 검토하셨다는건 애당초 3D로 전환할 의지가 거의 없었다고 보입니다. 저희는 Solidworks도입 후로 2D로 설계하는 경우는 없는 상태입니다. 조립이 어느정도 들어가는 제품이면 2D CAD를 아무리 잘해도 3D CAD만큼 효율이 안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간섭이나 조립방법, 무게중심 등등. 시뮬레이션도 쉽게 할수 있구요. 기존 2D설계품목하고 공용하는 문제는 DWG 도면은 그냥 사용하고 3D모델링만 만들어서 사용하면 됩니다. 초기에 시간이 드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물론 설계자들이 2D로 설계하는것에 불편이 없다면 (3D전환의 이점이 크지 않다면) 그냥 2D를 유지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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