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휴렛팩커드를 추억하며..

내가 처음 HP와 인연을 맺게 될 당시, 한국에서 HP는 삼성HP(삼성휴렛팩커드)였다. 아마도 1992년 학위시절 HP 9000/720 워크스테이션을 사용하게 되면서 교육도 듣고 했다. 이후 거의 10 년 가까이 HP-UX 기반의 HP 시스템은 3D CAD 시스템 운용을 위한 나의 메인 플랫폼이 되었고-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그 후 10년 정도가 지난 후 난 흔치 않은 HP 시스템 운용 운용 경험 덕에 HP에서 일할 수 있는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HP를 떠난 지 15년이 지난 오늘 나의 기나긴 시간을 함께 했던 장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문서 파일을 하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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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안에 들어 있는 문서는 거의 15 ~ 20년 전에 출시되었던 HP ProCurve 2424M Switch에 관한 내용이었다. 삼성HP는 1995년 한국HP로 이름이 바뀌고 1998년에는 삼성과 무관한 HP의 한국지사가 된다. 그리고 내가 HP와 첫 인연을 맺던 2000년은 HP의 의료/계측사업부가 Agilent로 분리되던 시기였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HP는 여전히 계측기나 의료기 기업으로 기억되고 있다.

HP는 2~3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있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의 가장 암울하고 위험할 수 있었던-하지만 당시 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시기를 무난하게 심지어는 행복하게 넘길 수 있었고, 반면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를 거부하는 계륵이되기도 했다. 내가 HP의 시스템이나 HP-UX를 고수하는 동안 세상은 순식간에 변했고, 난 오늘날과 같은 변화에 대한 예측을 비웃기까지 했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PC, 모바일 그리고 스마트 기기의 세상을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먼저 접했지만 난 모든 것을 어이없고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하기까지 했다. 내 인생에서 후회하거나 미련을 가지지는 않지만 스스로 세상의 변화에 맞서라도 떠드는 입장에서 가장 뼈아픈 실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의 아니게 난 이제 HP, HP-UX, HP 시스템 등에 관한 모든 물건과 기록 그리고 추억 마자 버려야 한다. 우습게도 내가 가졌던 HP의 모든 것이 나랑 아무 상관 없었던 애플의 것과는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HP에 관한 모든 것은 애초부터 개인적인 애정보다는 일, 업무 그리고 역량으로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필요치 않는.. 물론 아직도 이 세상의 수 많은 숨은 곳에서 HP 시스템과 HP-UX는 구동되고 있지만 기능적 운용 이상의 수준은 아니다. UNIX의 황금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사실 HP가 PA-RISC 기반 시스템에서 IA-64 Itanium 기반 시스템으로 이전하면서 그리고 HP-UX 기반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을 포기하가면서 HP 시스템과 HP-UX와 관련된 모든 것은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남은 것은 추억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앞서 언급한 실수에 대한 자위였을 뿐이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HP 본사의 임원에게 PA-RSIC 포기와 관련한 변화를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HP가 파는 물건 그 자체에 어떠한 애정이나 관심을 줄 필요가 없으며, 그저 기업의 사업 정책 변화일뿐이라고 했다. 그 말이 옳았다. 팔고 이익을 남겨야 하는 입장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다시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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