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워크스테이션의 암흑 시대를 지나며

지난 거의 20년 간 난 워크스테이션 매니아, 홀릭이기도 했다. 내 모든 연구의 기반으로 좋은-빠르고 크고 안정된-워크스테이션 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학교나 회사의 한계로 슈퍼컴퓨터나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없으니 스탠드얼론 워크스테이션이 내 지적 범위의 영역이기도 했다. 또 내 앞에서 구동되는 모습을 보기 좋아했기 때문에 굳이 그 이상의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물론 난 가격대성능비보다는 브랜드나 디자인 등으로 워크스테이션을 평가했다. 덕분에 난 애매한 디자인의 DEC나 장난감처럼 보이는 SGI의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귀엽다면 아예 SUN 워크스테이션을 선호했고 성능이나 무게감에서는 HP나 IBM의 워크스테이션을 선호했다(아쉽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난 IBM RS/6000, PowerStation 워크스테이션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난 RISC 마이크로프로세서와 UNIX 운영체제 기반의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 혹은 데스크 시스템의 운영체제로-영원하지는 않더라도-내 생애 동안 지속될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워크스테이션의 운영체제로서 UNIX는 1980년대에 시작하여 1990년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보냈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사리지게 되었다. 물론 GNU/Linux나 Mac OS X가 그 후계자로서 살아 있다고 자위할 수는 있겠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는 PC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하드웨어 구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저 먼 친척이 살아 남은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배신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업무 관계상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지난 10년간 사용해온 HP의 XW 및 Z 시리즈 워크스테이션 정도에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21세기는 이미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운영체제에 의해 워크스테이션이 새롭게 정의되었다. 그리고 2010년을 지나면서 더 이상 RISC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 워크스테이션은 사라졌다. 또한 워크스테이션과 PC의 구분도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에 의한 것이 아닌 어플리케이션 운용 인증이나 사용 환경을 개선하는 유틸리티 지원 수준으로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지난 시절 조립 PC 혹은 저가 PC를 생산하던 국내외 업체들이 워크스테이션이란 이름으로 출시하는 컴퓨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RISC 혹은 UNIX와 같은 전통적인 워크스테이션 기준이 사라진 HP 정도만이 기존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지속하고 있다. Dell의 경우는 애초 PC 워크스테이션에서 시작되었다. IBM은 워크스테이션은 물론 PC 시장에서 철수했다. DEC, SGI 등은 오래 전에 사라졌으며 SUN 역시 Oracle과 합병 후 IBM와 함께 RISC 기반 워크스테이션을 잠시 출시하기도 했지만 곧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포기한다. 가격대비성능에서는 물론 절대적인 성능에서도 인텔 Xeon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의 PC 워크스테이션이 RISC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 워크스테이션을 추월한 지 이미 오래하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요 CAD 및 3D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를 다루는 웹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나 리뷰를 진행한다. HP나 Dell 수준은 물론 Lenovo, Asus 그리고 MSI 등이 제품들도 이제는 워크스테이션 라인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리뷰나 평가에서의 장점 혹은 단점은 더 이상 상대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동일 계열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높은 클럭의 모델이 낮은 클럭의 모델에 비해 더 나은 성능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예전 엔지니어링 시절과 달리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나 그래픽스 서브시스템의 장착에 제한이나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평가들이 거의 Sponserd Review로 게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1990년대 PC의 황금기였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암흑 시대였다. 지금의 워크스테이션과 같이 동일 계열에서 특색없이 빠른 부품을 사용 여부에 의해 우열이 결정되는 시기였다. GNU/Linux 등장은 잠시나마 이러한 암흑 시대의 빛으로 기대되기도 했고, 지금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Mac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아직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제 더 이상 워크스테이션이 연구나 개발 업무의 로망이 시대는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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